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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훈의 시와 산문


한국의 품격 높은 문장, 조지훈의 시와 산문

지훈문학관 전경 - 조지훈의 일대기를 한눈에 볼 수 있다.

지훈의 시
청록집

청록집

지훈은 소년시절부터 한학을 배우는 한편, 서구와 각종 서적을 탐독하면서 동서의 학식을 쌓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문학청년 시절에는 「백지」동인으로 참여하여 서구의 퇴폐적이며 탐미주의적 색채의 시를 잠시 습작하다가 이내 동양적인 관조와 정관의 세계로 방향을 틀어 거기에 몰입하였다.

지훈이 시인으로서 그 이름을 세상에 알리게 된 것은 정지용에 의해 1939년 「문장」지 4월호에 시 「고풍의상(古風衣裳」을, 같은 해 11월에 「승무(僧舞)」를, 그 이듬해인 1940년 12월에 「봉황수(鳳凰愁)」를 추천 받으면서 부터였다.

이로부터 광복 1년 후인 1952년 6.25동란 중에 출판된 첫 단독시집인 「풀잎단장(斷草)」 그리고 「조지훈 시선」(1956년)까지가 지훈 시의 전기에 해당된다. 이 시기의 대표적인 작품들로는 추천시 3편과 「완화삼」, 「파초우」, 「낙화」, 「고사」, 「마을」, 「산방」, 「달밤」, 「절정」, 「풀잎단장」, 「지옥기」, 「손」, 「방」, 「창」 등을 들 수 있다. 추천완료 이후 15년 남짓한 이 시기에 차례로 출판된 시집들 가운데에 그를 대표하는 여러 편의 절창이 들어있고, 그의 시 세계를 특징지을 수 있는 노래들이 여기에 내포되어 있다.

지훈 시의 본질은 아려(雅麗)한 시어와 유연한 가락에 얹혀 드러나는 한국의 고전적인 미의식, 잊혀져가는 것에 대한 아쉬움과 슬픔, 동양적인 사상과 정신에서 비롯된 자연관, 그리고 불교의 한줄기인 신의 경지를 은근하게 그려낸 것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그의 두드러진 시풍과 시적경향은 시변적, 철학적이면서 또한 감각적이고 관능적인 것을 띄고 있다는 점이다. 이 두 가지의 경향은 전·후기를 막론하고 그의 시 전반에 관류하고 있다.사람들은 지훈을 일컬어 모든 면에서 조숙한 인물이라고 한다. 그런 면에서 조명할 때 그의 시도 이른 시기에 이미 절정에 올랐다고 규정하여도 무방하다.

6.25동란을 거치면서 지훈은 엄청난 가족사의 비극을 체험한다. 조부의 자진(自盡), 부친과 매제의 납북, 동생의 죽음… 이런 감내하기 어려운 참변은 지훈에게서 ‘시의 마음’을 앗아갔고 서정시를 습작하는 의욕을 꺾어 놓았다. 희귀한 자료인 육필시집이 전해오는 것도 새로운 시를 창작하는 작업보다는 이미 발표된 자신들의 시들을 펜으로 정서하는 가운데 잃어버린 시의 고향을 되찾으려는 심리가 작용된 것이 아닐까 헤아려 볼 수 있다.

지훈 시공원의 조형물 지훈의 대표적인 시 '승무'가 새겨져 있다.

지훈 시공원의 조형물
지훈의 대표적인 시 '승무'가 새겨져 있다.

한동안 주체할 수 없는 마음을 달래면서 잠시 호흡을 조절한 지훈은 다시 「역사 앞에서」(1959년)을 상재하면서 전기와는 전혀 다른 시의 세계로 전환한다. 서정시에서 참여시 창작으로 방향을 바꾸면서 그의 후기가 시작된다. 일제 때 숨어살면서 써놓은 막막한 시대의 노래들과 광복이후 좌우의 극심한 갈등과 사상적인 분열상을 안타까워하면서 읊은 시편들, 6.25민족상잔의 참상을 묘사한 작품들을 모아 묶은 이 시집은 우리 민족이 겪은 민족사적 비극을 증언한 현실 참여의 대표적인 사화집으로 특히 「다부원(多富院)에서」, 「패강무정(浿江無情)」 등과 1950년 6월 25일 이후 서울이 함락되기까지의 과정을 읊은 장편의 시는 당나라 두보가 전란을 겪으면서 노래한 일련의 시들을 연상케 하는 명편으로 꼽힌다. 그 시어는 생활어에 가깝고 어조는 격정성을 드러낸다.

후기에 속하면서 또한 그의 마지막 시집으로 남은 「여운(餘運)」이 간생된 것은 1964년, 「조지훈 시선」 이후 창작한 서정시 계열의 몇 편과 4월 혁명과 관련된 시들을 모아서 간행된 시집이 바로 「여운」이다.

이로써 지훈은 자신의 시 전반에 대한 평가를 독자에게 맡기고 어느 평론가의 말처럼 ‘여운’을 남긴 채 이승을 떠났다. 저승으로 가기 얼마전 병마에 시달리며 「병(病)」에서는 삶과 죽음의 경계를 무너뜨린 시인의 놀라운 사생관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후기시의 명편의 하나로 평가된다.

지훈의 산문
지훈 시비

지훈 시비

지훈은 출중한 시인이면서 또한 산문에도 능한 명 문장가였다. 에세이집 「창에 기대어」(1958년), 「시와 인생」(1959년), 「돌의 미학」(1964년)등과 논설집 「지조론」(1962년)은 문장의 교본이 될 만한 글들을 모아 놓은 책이다. 예나 지금이나 국적 불명의 글들이 독자들의 눈을 피곤하게 하는 경우가 적지 않은데 지훈의 문장은 당대는 물론 오늘에도 신문으로서 갖추어야 할 모든 요소를 두루 구비한 한국의 품격 높은 문장으로 정평이 나있다.

수필이든 논설이든 그의 글은 적절한 어휘의 구사, 맛깔스러운 수사, 탄탄한 구조를 바탕으로 하여 처사접물의 소감과 주장을 종횡무진으로 드러내는 특징을 보여준다. 고사의 원용이 있는가 하면 현대인의 감각에 부합되는 표현이 도처에 산견된다. 막힘이 없는 서술이 독자의 가슴을 후련하게 씻어주는가 하면 치렁치렁한 멋진 가락, 해학과 유머기 있는 이의 감흥을 한껏 돋우어 준다. 군더더기가 없는 핵심을 뚫는 촌철살인의 문장기법은 한 시대를 휘어잡던 지훈 문장의 요체이기도 하였다. 동서고금에 두루 통달한 그의 깊고 넓은 학식이 문장 곳곳에 용해되어서 독자들의 교양과 식견을 한 단계 높이는데 기여한다. 이 또한 지훈 문장의 미덕의 하나로 꼽힌다.

그가 서거한지 오랜 세월이 흘렀음에도 대학출판부를 비롯하여 전국의 다수 출판사가 그가 남긴 논설과 산문 선집을 책의 제명만 달리하여 꾸준히 펴내고 있는 까닭도 그의 문장의 매력과 아름다움, 지적인 호소력과 감상적인 세계가 오늘을 살고 있는 교양인의 취향에도 맞기 때문이 아닐까한다.

<출처 : 지훈문학관>